Archive for 2016/05/13

곡성

1. 여기 나오는 곽도원 캐릭터의 부인과 어머니는 필요할 때만 사람이고 나머지 분량에서는 투명인간이나 사물(e.g. 굴러다니는 빗자루, 날라다니는 먼지, 야하게 생긴 램프), 내지는 없는 존재 취급해야지 ‘쟤들은 팔다리 조동아리가 없나’라는 생각이 덜 올라옵니다.
비단 저 두 캐릭터의 문제가 아니고 곽도원 주변인물 모두가 그러함.

2. 곽도원 캐릭터. 내가 여태 본 인물 중에 거의 독보적으로 모든 행동 동기가 감정이다. 당연스럽게도 주로 화. 특정 시점 이후로(하지만 딱히 이전에도 이성적인 인물은 아니다) 영화 플롯이 곽도원이 화를 낸다-결과-또 화를 낸다-결과 이런식으로 계속되는데 요상스럽게도 이 영화의 원초적 요인은 곽도원의 화가 아니다. 요상하다는 표현을 썼지만 과연 이런 플롯이 괜찮은 구성인가 생각하면 글쎄다. ‘사람이 감정에 휩쓸리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한다’ 이런게 영화에 한두번 나와야 보는 관객도 그러려니 하지만 영화 내내 저러고 있으니 짜증이 치밀고 이미 짜증이 압도한 내 마음은 찜찜한 결말에도 동요하지 않게 되고 뭐 그렇다. (이 지점에서 영화 내내 계속되는 곽도원의 짜증나는 행동은 나홍진의 의도인가 아닌가 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의도했다한들 완성도가 올라가긴 하는가.)
중간에(시계도 한 번 봤다. 시작하고 50분 그 이후. 시작 전 광고 띄우는 영화관은 10분 더합시다.) 곽도원 캐릭터를 포함한 둘셋 모두가 감정감정감정에 휩쓸려 아무도 (전체 서사에 영향을 끼칠만한)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데 거기다 쏟아붓는 쇼트 개수가 상당하다. 그리고 직업이 경찰이라는 사람들이 거기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그 장소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영화 내내 곽도원은 화가나고 뭐하고 뭐해서 이상한 짓 만 하고 다니는데 주변 인물마저 먼지 같아서 별로 하는 거 없이 곽도원의 이상한 짓으로만 러닝타임을 채우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글쎄 영화 자체가 공포에 대한거니 주인공도 감정만 가지고 움직이는 건가. 마음이 사로잡힌 인간은 뭔 짓을 할 수 있는가 이런 방향으로 받아들여야하나.

3. 초자연적인 존재를 모두가 믿고 시작하는 종교영화지만 정작 나홍진은 종교에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은 듯. 천주교는 버린 것도 아니고 살린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고 (천주교인들은 성당을 교회라고 부르나요?) 영화의 강한 키포인트인 무속신앙도 그냥 자주 나올 뿐 존중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써먹기 좋은 거죠.
그리고 종교화합 같은 건 바라지 마세요.
이 부분은 검은 사제들이 훨씬 나음. 심지어 굿 씬도 거기가 낫습니다.

4. 나 넘 영화 욕만 한 거 같고… 그건 좋아요. 영화 전체가 평균적으로 가지고 있는 분위기. 나는 뫄뫄한 느낌의 영화를 만들것이다. 딱 목표잡고 충실히 이행한 느낌. 2번 이야기를 이 맥락으로 봐야하나 고민.

5. 그리고 배우들도 (연기가) 다 좋죠 크게 디렉팅 안 해도 알아서 잘 하는. 쿠니무라 준은 배우 인생에 할 수 있는 개고생 오브 개고생을 하고 가셨는데 이 영환 천우희 최고 작품이 아니라 이 분 최고작품으로 불려야한다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