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2016/07/31

배트맨 대 수퍼맨 리뷰

비평 수업 듣는다고 쓴 글.

영화 리뷰 배트맨 대 수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태생적으로 마블 스튜디오의 Marvel Cinematic Universe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었던 이번 배트맨 대 수퍼맨은 여러모로 아쉬운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1989년, 2005년에 이어 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어린 브루스 웨인의 서사를 굳이 세 번째로 반복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역시 세번째로 리부트되면서 스파이더맨의 탄생 부분을 과감히 생략하기로 한 마블/소니의 선택과 비교되기 시작한다.) 무장 강도를 주먹으로 어찌 해보려던(이 때 꽉 쥐는 주먹을 클로즈업하기까지 한다) 토마스 웨인에 대한 묘사라든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총격을 받았음에도 비교적 멀쩡한 얼굴로 사망한 마사 웨인, 그리고 어린 브루스 웨인이 박쥐와 함께 부양하며 이것이 단순 회상이 아닌 환상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까지 시퀀스 전체가 쉽사리 이해되지 않거나, 그 목적을 알 수 없는 묘사로 채워져 있다. 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기능하는 목적은 (후에 주요한 소재로 쓰이는) 마사라는 이름을 배우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것으로, 이것 조차 ‘여자로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가 내 엄마가 되었을 때 갑자기 온갖 의미가 생기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여성에 대한 사고가 투명하게 들어가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사고는 한달 뒤 개봉한 시빌워에서도 여전히 드러난다.)

이 다음 바로 이어지는 메트로폴리스 시퀀스는 또 다시 전작 맨 오브 스틸의 반복이다. 파괴된 도시에 대한 브루스 웨인의 입장이야 서사 상으로 반드시 드러내야 하는 부분인 것은 맞지만 굳이 맨 오브 스틸의 시간대를 두 번씩 보여 줄 필요는 없었다. 이는 영화가 서투르게, 내지는 성급하게 기획된 나머지 차후 단독 영화로 과감히 빼버렸어야 할 배트맨/브루스 웨인의 비중을 어떻게든 채워 넣으려다 보니 일어난 일로 보인다. 결국 영화는 초반 필요 없는 반복으로 두 시간 반이나 되는 러닝타임의 일부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획상, 연출 구성상의 문제는 몇몇 액션 시퀀스에서도 이어진다. 고담항으로 밀반입한 크립토나이트를 쫓는 체이스 시퀀스는 애초에 ‘어떻게 하면 요란하고 화려하게 목표물을 놓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듯, 수퍼맨이 배트카를 멈추기 전까지 흡사 원래부터 잡으려는 의도가 아니었던 듯이 목표물인 크립토나이트를 실은 트럭이 아니라 의미 없이 그 호위 차량을 망가뜨리는 것에만 집중하며 무언가 계속 부서지고 폭발하는 장면만이 나올 뿐이다.

그리고 오프닝 시퀀스를 포함한 세 번씩이나 나오는 브루스 웨인의 환상 내지는 꿈(거기다 이 중 두 번이나 예지몽에 가까운 것이지만 이를 이상하게 여기는 뉘앙스 없이 영화의 끝에 가서 ‘feeling’으로 대꾸하기만 한다. 역시나 성급한 기획으로 차후의 저스티스 리그를 위한 복선을 무리하게 넣은 탓이다.) 중 세 번째로 나오는, 크립토나이트를 구하러 갔다가 함정에 빠지고 마는 시퀀스 속 일대다(一對多) 격투씬은 롱-테이크에 롱-쇼트로 처리되었다. 문제는 극중에서도 Suit가 아닌 Armour라고 부르는 배트맨의 두꺼운 코스튬 때문에 쇼트 전체가 더할 나위 없이 굼뜨고 힘들어 보인다는 점이다. 차라리 피로한 배트맨을 의도했다면 롱-쇼트를 포기하고 다른 효과를 넣었어야 했고 그것도 아니라면 롱-쇼트와 롱-테이크 둘 다 포기하고 짧게 끊어 속도감을 줬어야 했다. 비효율적인 촬영 덕에 관객들은 캐릭터가 아닌 배우에 이입해 그 고생을 간접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배트맨과 수퍼맨의 격돌은 각 캐릭터의 탄생 이후 처음으로 영화상에서 처음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외부적인 관심은 물론이거니와 내부적으로도 잘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컸으리라고 생각된다. 둘 간의 싸움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통상적인 versus의 줄임인 vs가 아닌, 판례에 주로 쓰이는 v라는 줄임을 제목에 썼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둘 사이의 사상 차이가 영화의 주요 소재인 것은 사실이다. 잠깐 시빌워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대규모 상업 영화라는 매체 특성 상 어느 한 쪽을 좀 더 지지할 수 없기 때문에, 영화 중반까지는 어느 정도 히어로들 간 사상 대립의 노선을 취하다가 중반 이후 문제의 사안을 그들 사이의 개인적 문제로 축소시켜 결국 어느 쪽도 승리하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반면 배트맨 대 수퍼맨의 경우 외부에 절대악을 상정해 놓은 후 결국 같이 물리치는, 장르에서 제일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시빌워에도 이런 부분이 나오긴 하지만 절대로 이야기의 중심에서 활용되지는 않는다.) 쉬운 것이 곧 나쁘다는 뜻은 아니니 방법 자체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런 대신에 제대로 다뤄져야 했던 사상 차이 그 자체와 화합의 과정들은 각자 조금씩 엉성한 기획과 연출과 촬영과 각본이 서로 합쳐 제대로 표현되는 것 없이 끝나버린다.

먼저 배트맨의 경우 범죄자들에게 배트 문양 낙인을 찍어 혼자서 죄인을 심판하는 부분 만 지적될 뿐, 그가 저지르는 행동에서 비롯된 인명피해, 재산피해는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으며, 심지어 언젠가 옳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수퍼맨을 막으려 하는 그 자신은 과연 옳은 자인가 라는 자각도 없다. 왜냐하면 영화는 수퍼맨이 배트맨을 옳지 않다고 여길 그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 그 외 다른 배트맨의 행위를 판단할 여유도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슈퍼맨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낫다. 상원의원 핀치와 언론이 계속적으로 그의 도덕적 책임에 대해 물으며 배트맨의 시선을 대변하기 때문인데, 그 마저도 폭파사건으로 핀치 의원이 사망하면서 함께 사라진다.

둘의 물리적 충돌도 썩 좋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애초에 대화로 풀면 더 쉽게 끝났을 일을 그저 ‘이 영화에선 어쨌든 둘이 한 번은 싸워야 하니까’라는 태도로 시작하여, 앞서 남성 중심적 사고라고 지적한 바 있는, ‘마사’라는 공통된 엄마 이름이 마치 마법 주문이라도 되는 듯 갑자기 화해하며 끝나버린다.

뒤이어 등장한 둠스데이 하나를 처리했을 뿐인데 그 이전의 모든 문제가 자연히 해결되기라도 한 듯 많은 부분을 정리하지 않은 채로 영화가 끝나는데, 결국 특정 시점 이후 영화가 두 캐릭터에게 던지던 물음을 중단함으로써, 도리어 관객에게 해줬어야할 대답을 얼버무리고 만 것이다.

대신 각자의 역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배우들과, 상황 및 캐릭터에 맞게 잘 작곡된 음악이 영화를 지탱하고 있다.

렉스 루터를 예로 들자면, 여러 어려운 단어들을 위태롭게 횡설수설 뱉어내는 모습과 여러 가족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사들을 보아 연출 단계에서 배우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캐릭터의 비전은 확고해 보인다. (다만 여기서도 배우의 기존 이미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기존 렉스 루터의 이미지를 벗어난다는 비판도 존재하기는 한다.) 비교적 배우로서의 색채가 약한 벤 애플렉을 제외하고서는 적어도 각 캐릭터들은 배우들(과 연출)을 통해 잘 구현되어 있다.

캐릭터의 성격이 확고하면 영화 음악도 마찬가지로 확고해지며 반대로 음악이 원하는 바가 확실하면 캐릭터의 성격도 확실해진다. 다크나이트를 포함한 여러 음악을 작곡한 한스 지머의 손을 빌어 각각 시퀀스에 맞는 음악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특히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느낌의 원더우먼 테마곡은 차후 개봉할 단독 영화로까지 관객의 기대를 연장시키는 효과를 주고 있다.

결국 각 부분으로서야 좋은 점이 분명 있지만 사전 계획과 연출능력이 미흡하여 전체적으로 여러 균형이 흐트러진 영화가 나오고 만 것이다. 수퍼맨과 배트맨의 첫 조우라는 점, 영화사가 계획한 거대 프로젝트의 거의 첫 단추를 끼우는 영화라는 점 (그리고 경쟁사 마블은 이미 Phase3를 갓 시작하고 있었던 점) 때문에 어떻게든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내야 했던 상황이었기에 매우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