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2016/11/07

[시나리오] 추풍낙엽

시나리오 심화반 수업 3주차(=2번째 과제)에 쓴 시나리오.
‘바람’을 소재로 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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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인공의 단칸방,

 

주인공(5,60대 남성)이 상 앞에 앉아 백지 위에 “유 서”라는 제목의 글을 쓴다.

방에는 옷가지와 술병, 담배곽이 널부러져 지저분하다.

펜과 종이가 닿아 서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2 00군 버스 터미널,

 

주인공이 시외버스에서 내린다. 각자 제 갈 길을 알아서 찾아가는 다른 승객들과 달리 나갈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3 터미널 맞은편 버스정류장,

 

맞은편에 00버스터미널 간판이 보이고 주인공이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건너편 가로수 아래에서 환경 미화원이 낙엽을 쓸고 있다.

LED 번호판이 없는 구식 버스가 오고 주인공이 탄다.

 

#4 버스 안,

 

주인공이 고개를 기웃거리며 창밖을 본다.

밖의 건물은 대부분 3층을 넘지 않고 풍경도 이내 논밭으로 바뀐다.

 

#5 버스 종점,

 

버스 뒷문으로 주인공이 내린다.

앞문으로 곧이어 버스 기사가 내린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윙윙 소리가 난다.

 

주인공

저기, 말 좀 물읍시다.

여기서 바닷가로 가려면 어디로 가면 됩니까?

버스기사

바닷가요?

여기는 바닷가 쪽이 아닌데.

주인공

00번 버스가 (강풍에 말이 잠시 끊기고 다시 큰 소리로) 그리로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버스기사

(옷을 여미며 역시 큰 소리로)아이고, 거기는 반대쪽인데.

그런데 날을 영 잘못 잡으셨네.

(손을 가로로 펴 아래위로 두어 번 흔든다) 오늘 여기가 강풍 주의보요.

주인공

(눈이 살짝 커진다) 그래요? 그러면 위험합니까?

버스기사

아니 뭐 죽기야 하겠소.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키며)저 짝에서 나가는 거 다시 타쇼.

 

주인공이 버스기사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6 버스 안,

 

버스의 덜컹거림에 맞춰 주인공의 몸도 같이 흔들린다.

주인공은 허공만 쳐다본다.

 

#7 바닷가 동네의 버스 정류장

 

정차 후 다시 출발하는 버스.

정류장 표지판 옆에 주인공이 서있다.

사람이 거의 없이 한적한 길에 중형 동네 개 한 마리가 총총총 주인공의 진행방향에 앞서 걸어간다.

그런 개를 바라보며 같이 걷는다.

 

#8 수퍼마켓 앞,

 

주인공이 소주 한 병과 잔돈을 각각 호주머니에 넣으며 가게를 나온다.

가게 앞에 앉아 뒷발로 턱을 긁는 #7의 개를 주인공이 한 번 쳐다본 후 오른쪽 방향으로 걸어간다.

 

#9 해변,

 

모래가 아닌 바위로 이루어진 해변.

강한 바람에 파도가 큰 바위 위로 높이 친다.

주인공이 천천히 바다 가까이 다가가다가 뒤로 휘청하다 그 자리에 선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서 가만히 파도를 쳐다보는 주인공의 머리카락이 강하게 흩날린다.

 

이내 바위 위에 앉아 주머니 속 소주를 꺼내 열어 한 모금 한다.

주인공이 바닥을 보며 한숨을 쉬는 중에도 계속 바람은 불고 머리카락은 흔들린다.

 

강한 파도 한 번에 앉아있는 주인공에게 바닷물이 튄다.

한 번 움찔하며 물이 튄 바지와 소매를 바라본다.

(외화면 소리) 사람이 외치는 소리.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동네 주민 한 명이 길에 서서 나오라는 수신호를 하며 주인공을 부른다.

그 옆에 가만히 앉아있는 개.

주인공이 동네 주민과 물이 튄 소매를 번갈아 보다가 우물쭈물 동네 주민이 있는 길가로 걸어 나간다.

 

#10 버스터미널 앞, 저녁

 

가로수 아래에서 환경 미화원이 낙엽을 쓸고 있다.

주인공이 막 길을 건너 가로수 쪽으로 걸어간다.

 

주인공

수고가 많으십니다, 오늘 같은 날.

환경미화원

(계속 바닥을 쓸며)아, 예.

저희들한테 날이 어딨겠습니까?

이것도 다 철이지요. 다음주 쯤 되면 이 이파리도 얼추 정리가 됩니다.

그땐 또 새순 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철되면 또 쓸고.

뭐 그렇습니다.

 

주인공

아, 그렇겠네요.

환경미화원

댁에 가십니까?

주인공

네, 수고하십쇼.

환경미화원

예, 잘 들어가십쇼.

 

주인공이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 터미널 안으로 들어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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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쓸 만한 이야기를 생각 못 하다가 제출일인 토요일 넘기고 일요일에 두시간 앉아서 썼더니 딱 여기서 생긴 문제점을 지적 받았다.
지나치게 주인공과 카메라 사이에 감정적 거리가 멀다는 거. 인물 전사를 생각 못 하고 쓰다보니 그렇게 되고 말았다.
제출 전에 나름 전사를 생각해보려고는 했지만 천성이 비관적인 내 머리에서는 그냥 주인공이 죽는게 낫겠다 싶은 내용만 생각이 나서 뭔가를 더 붙이는 것을 포기한 것도 있다.
그래도 쓰다보니 이런식으로 완성은 되어 만족한다. 아마 내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복잡한 서사가 아닐까 (…)

그래도 장담컨데 그 수업 듣는 영화 전공하는 애들보다는 내가 훨 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