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2016/09/01

​부산행 리뷰 – 머나먼 한국형 매드 맥스의 꿈

비평수업에 쓰려고 쓴 글. 감정이 많이 섞였다고 지적 받음.

2015년 12월 한 매체에서 익명의 여성 제작자는 “매드맥스(2015)”를 언급하며 “어떤 배우가 샤를리즈 테론처럼 얼굴 전체에 검댕을 묻히고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을까”라고 답했다. 과연 한국형 매드맥스가 나오지 못 하는 것은 여성 배우들 때문일까. 이번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2016)” 으로 그 답을 알 수 있다. 

영화는 여자아이, 임신부, 여성노인 이 세 부류를 약자로 상정해놓고 영화 내내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영화에 남자 아이나 남성 노인은 없다.) 간혹 보이는 적극적인 행동도 주체적인 남성의 행위를 절대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그친다. 

이를 잘 드러내는 성경(정유미扮)의 몇몇 행동이 있다. 먼저 직접 유리문을 신문지로 가리는 모습 자체는 적극적으로 보이지만 석우(공유扮)가 좀비의 시각 인지 능력을 알아낸 행위를 뒤따른다.

그리고 대전역에서 성경이 주도적으로 인길(예수정扮)과 수안(김수안扮), 그리고 노숙자(최귀화扮)까지 데리고 객차 내 화장실로 숨어들어가는 장면에서는 이들 간 암묵적 위계마저 느껴진다. 성경이 능동적으로 구하는 사람은 여성 노인인 인길이며 얼떨결에 객차에 태우게 되는 사람은 -남성이지만 몸이 불편하며 사회적 지위가 낮은-노숙자이고, 이 사이에서 어른들에게 끌려 다니는 수안이 있다. 이들의 적극성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이후로도 이 층위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성경보다 아래 층위에 있는 여성 노인인 인길은 내내 특징적인 행동 없이 수동적 어머니 상을 연기하며 옆에서 종길(박명신扮)은 이를 부각시키는 대사를 뱉는다. 둘 모두 배역보다 젊은 배우들이 연기하는데 심지어 박명신은 64년생으로 고작 50대 초반이다. 영화가 설정한 ‘늙은 여자’의 행동 범위가 얼마나 좁은지 짐작케 한다.

특히 인길과 성경은 맨 아래 층위의 수안을 품에 안기만 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남성 뒤에서 다른 행동 없이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보인다. ‘애는 여자가’라는 가부장적 인식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여성들이 나서서 행동하지 않도록 차단하는 도구로 아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약자니까’라는 이유로 설명했다고 치자, 그러면 이 범주 밖의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진희(안소희扮)는 어떤가. 교복같이 생기지도 않은 짧은 치마는 넘어가더라도, 9호 칸 밖으로 쫓겨나게 된 친구 영국(최우식扮)과 함께하겠다는 나름의 선택마저 영국을 따라가는 모양새에, 내내 영국의 뒤를 쫓아다니기만 하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다. 결국 남성보다 앞에 서서 행동할 줄 아는 여성은 이 영화에 없다.

사람마다 신체 활용 정도가 다른 것이 사실이니 영화 속 층위 자체야 이해할 수도 있지만, 이들 약자를 모두 여성으로 설정하고 계속적으로 프레임 중심에서 벗어나게 묘사한 부분은 재고가 필요하다.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등장하는 여배우가 나오려면,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나오는 역할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