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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가필드 배니티 페어 인터뷰

http://www.vanityfair.com/hollywood/2015/09/andrew-garfield-interview-99-homes-martin-scorsese

By Richard Lawson

라민 바흐라니 감독의 신작 99 Homes(*국내 개봉명 라스트 홈)에서 앤드류 가필드는 그와 그의 가족을 집에서 쫓아낸 자비없는 자(마이클 섀넌)를 위해 일해야 하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젊은 아버지를 연기한다. 우리는 최근 차기작 촬영을 위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필드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그의 새 영화와 차기 거대 프로젝트 2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스파이더맨 이후 커리어를 진행하며 겸손과 흥분을 내비치던 가필드는 전화 통화 내내 사려깊은 답변들을 해나갔다. 그는 라스트 홈의 대본을 접하게 된 “숙명”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고 헐리우드의 한 무리가 “생색내기”없이 블루-칼라 어떻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심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유일무이한 마틴 스콜세지와 함께 대만에서 촬영하게 된 것을 “순수한 기쁨”이라 표하며 그 도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배니티 페어: 대화 시간 내주어서 고마워요. 요즘 내내 호주에서 지내고 있는 건 알고 있어요.

앤드류 가필드: 네, 방금 일어났어요. 하지만 잠시 이렇게 내 삶과 떨어져 있으니 아주 행복하네요. 글쎄, 일하는 동안에도 잠시 떨어져있는 느낌을 받아서 그런가봐요.

라스트 홈에는 어떻게 합류하셨나요?

뉴욕에서 세일즈맨의 죽음을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라민은 뉴요커거든요. 브루클린에 살죠. 그래서 제 연극을 보러 온 거에요. 그 연극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는데, 연극에 완전히 압도당했었나봐요. 다 보고 나서는 몸을 잘 가누지도 못 하더라고요. 당연하게도, 그 연극이 의도한 바이기도 했죠. 밀러(*아서 밀러-극작가)가 다루고 고뇌했던 주제들이 라민이 흥미롭게 알아보던 분야와 비슷했어요. 거기서 숙명같은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제 캐릭터는 원래 좀 더 나이가 많은 걸로 설정됐지만, 라민 생각에 좀 더 어려도 되겠다고 그 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당시 제 집 주변에 있는 버디즈 인 트리베카에서 멋진 점심을 함께 했죠. 그 날은 이란식 설날이었고 그의 생일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라민이 예식을 치르는 듯하게 제게 대본을 건냈죠.

30 페이지를 읽을 때 쯤에 알았어요. 제 아버지가 저희 동네에 오신다는 걸요. 영화가 확실히 크게 다루고 있는 부분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걸 읽고 있는 중에 오신 아버지도 한 번 보시게 됐어요. 저랑 반응이 똑같았죠. 그래서 거기엔 무언가… 포괄적이면서도 특이한, 영화가 탐구하고 있는 커다란 외상이 30 페이지에 있다는 걸 알게됐어요. 저희 둘은 분명 여태 굉장히 다른 인생을 살아왔잖아요. 스토리가 보편적으로 요구하는 부분을 찾아냈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어요.

퇴거 당하는 씬은 꾀나 괴로웠는데요. 무서울 정도로 사실적이었어요. 어쩜 그런 식으로 직관적이고 자연스럽게 만든거죠?

되게 즉흥적이었어요. 어떤 물건을 가지고 나갈지도 몰랐고, 그 물건을 문 앞에 두는 건지도 몰랐거든요. 심지어는 제가 문을 열게 되리란 것도 몰랐어요. 그 씬에서 그런 식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한 건 마이클의 캐릭터가 매우 완고한 퇴거 명령 대기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경탈은 저기에 세우고, 우리는 문을 못 닫고,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거죠. 그러면 저희는 2분의 시간이 있고 길거리로 나앉고 감옥에 가죠. 그래서, 그래, 그런 식으로 진행 되는 거에요. 그게 시간 제한과 시간 틀을 만들어냈어요. 갈 곳 하나 없지만 씬 구성 상으로 저희는 어딘가 가야하는 거죠. 아니면 제가 경찰이랑 싸우는 걸 택했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쟎아요, 그럼 영화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엄청 빨리 끝났겠죠.

그리고 감사하게도 우리에겐 로라 [던](*주인공의 어머니 역)이 있었죠. 천재적인 분이고 제가 참 좋아하는 배우였어요. 함께 일하고 나니 더 좋아졌죠. 또 당연히 마이클은 칭찬이 더 필요없는 분이죠. 그리고 그 위에 경찰 두 분이 계셨어요. 한 분은 랜디라고 퇴거 쪽 일을 하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그 업무를 정확히 알고 계시죠. [씬 촬영은] 불쾌하고, 끔찍했지만 한 편으론 굉장했어요.

어떻게 그저 노동 계층 이야기를 들려주기만 하는 헐리우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었나요? 영화에 굉장히 신뢰가 가더라고요.

제 생각엔 의도한 바가 그랬던 것 같아요. 모든 스태프의 의도이고 모든 배우들의 의도이고 당연히 감독의 의도였죠. 그런 일에 예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자찬하고, 과장하고, 젠체하는 헐리우드 [사람]이 되는 함정에 빠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끌림의 문제일지도 몰라요. 고려대상이 아니었거든요. 생각해보지를 않았어요… 지금 할 말을 끼워맞추고 있어요! 왜냐면 옳은 사람을 끄는 건 소재일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신뢰 얘기가 나온 김에, 건축 작업, 주로 목수 일을 영화에서 많이 하던데 잘 하시더라고요. 영화 준비하면서 다 배우신건가요?

운좋게도 제가 지난 5년 간 비는 시간에 배운게 그 거였어요. 배우로서 할 줄 알아야하는 취미 중 하나거든요. 라디오에 맞는 노래가 나올 때 까지 기다리는 거죠. 제가 좋아해요. 저희 할아버지는 목수셨어요. 제가 이걸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걸 몰랐지만 계속 거기에 마음이 끌리긴 했어요. 하면 진정도 되고 좋아요. 하지만 영화를 위해서 약간 더 배워야 했죠. 네일건은 써 본적도 없고 집의 뼈대를 잡아본 적도 없었어요. 만들어 본 것 중에 제일 컸던 건 흔들의자였거든요.

그게 바로 배우의 장점 중 하나에요. 배울 수 있거든요. 지금 제가 1940년대 군의관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것 처럼요. 굉장한 일이에요. 매달 학교에가고 새로운 걸 배우는 거죠. 작년엔 수사 훈련도 했어요. 정말 굉장하고 멋졌어요. 이 일이 주는 선물에요.

스콜세지와는 어땠나요? 촬영장에 그가 있다고 생각하면 무섭지 않았나요?

항상 두려워요. 그러니까, 지금도 두려워요. 긴나긴 강화기간이었죠. 영화가 계속 연기 됐거든요. 대만에서 마냥 촬영만 기다리면서 3, 4주를 보냈어요. 그래서 그 모든 에너지가 축적되면서 극도의 흥분을 가져왔죠. 드디어 촬영에 들어갔을 때, 제 생각에 한 테이크씩 찍어가면서 4개월 내내 저 자신을 버티게 했던 충분한 증기와 불이 제게 충분히 있었어요. 그땐 정말 믿을 수가 없었죠. 그리고 그와 함께 촬영장에 있는 건… 아시잖아요, 장인과 함께 일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의 주변에 또 장인들이 있어요.

이런 대단한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는 건 정말이지 순수한 기쁨이에요. 배우로서 제 꿈은 안전망같은 사람들을 주변에 두는 거에요. 다른 것도 해봐야해, 내지는 확실히 해놔야 해 아니면 다른 테이크를 써버릴거야 블라블라블라 뭐 그런 거 대신에 연기하는 그 순간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마티, 그리고 [그의 오랜 편집기사] 델마 슌메이커와 함께하다보면 그 사람들의 안목이 우리보다 훨씬 더 좋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래서 그게 꿈이라는 거죠.

촬영하면서 멀리 떠나있는 걸 좋아하시는데 그땐 대만이었고 지금은 호주죠?

한 가지 생각만 하면서 몰두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이 정말 정말 좋아요. 삶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있어 좋은 점이 있거든요.